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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형 포수 홍포 홍성흔의 야구 이야기|두산·롯데·빽 투 더 그라운드

 

 

홍성흔, 공격형 포수에서 2,046안타 타자까지|두산·롯데·빽 투 더 그라운드 이야기

 

목차

     

    홍성흔은 KBO에서 보기 드문 공격형 포수로 출발해 지명타자와 중심타자로 커리어를 완성한 선수다. 두산 베어스에서 신인왕을 받으며 등장했고, 롯데 자이언츠에서는 부산 팬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다시 두산으로 돌아온 뒤에는 통산 2,046안타를 기록하며 KBO 대표 우타자 중 한 명으로 남았다.

     

    홍성흔은 기록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선수다. 포수 출신 타자라는 희소성, 더그아웃 분위기를 바꾸는 에너지, 팬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캐릭터가 모두 강했다. 그래서 두산 팬에게도, 롯데 팬에게도 각각 다른 방식으로 기억되는 선수다.

    기본 프로필
    이름: 홍성흔
    생년월일: 1977년 2월 28일
    투타: 우투우타
    포지션: 포수, 지명타자, 1루수
    경력: 공릉초 - 중앙중 - 중앙고 - 경희대 - 두산 베어스 - 롯데 자이언츠 - 두산 베어스
    프로 입단: 1999년 OB/두산 베어스 1차 지명
    대표 별명: 홍포, 오버맨, 분위기 메이커
    대표 기록: 통산 2,046안타, 208홈런, 1,120타점, 골든글러브 6회

    두산의 공격형 포수로 등장

    두산 베어스 홍성흔 포수
    두산 베어스 홍성흔 포수_OSEN

     

    홍성흔은 중앙고와 경희대를 거쳐 1999년 OB/두산 베어스 1차 지명으로 프로에 입단했다. 데뷔 첫해부터 16홈런을 기록하며 포수답지 않은 공격력을 보여줬고, 1999년 KBO 신인왕을 차지했다.

     

    2001년에는 두산의 한국시리즈 우승 멤버로 활약했다. 당시 홍성흔은 포수 마스크를 쓰고도 장타를 기대할 수 있는 선수였고, 팬서비스와 쇼맨십까지 더해져 빠르게 인기 스타가 됐다.

     

    2004년 안타왕과 골든글러브

    홍성흔의 두산 1기에서 가장 빛난 시즌 중 하나는 2004년이다. 이 시즌 그는 KBO 안타왕에 올랐고, 포수 부문 골든글러브도 수상했다. 포수라는 수비 부담이 큰 포지션에서 타격까지 정상급으로 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주요 수상 내용
    1999년 KBO 신인왕
    2001년 포수 골든글러브
    2004년 안타왕, 포수 골든글러브
    2008~2011년 지명타자 골든글러브 4년 연속

    롯데 자이언츠 FA 이적

    롯데자이언츠 DH 홍성흔
    롯데자이언츠 DH 홍성흔_나무위키

     

    홍성흔은 2009년 FA를 통해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했다. 롯데에서는 포수보다 지명타자와 중심타자 이미지가 강했다. 부산 팬들의 뜨거운 응원 문화와 홍성흔 특유의 큰 리액션, 파이팅 넘치는 성격이 잘 맞아떨어지며 강한 존재감을 남겼다.

     

    롯데 시절 홍성흔은 이대호, 카림 가르시아 등과 함께 강한 중심타선의 한 축으로 활약했다. 사직구장의 열기와 홍성흔의 캐릭터가 맞물리며 “부산에서 큰 사랑을 받은 선수”라는 이미지가 굳어졌다.

    2009년 박용택과 타격왕 경쟁 논란

    홍성흔의 롯데 시절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장면 중 하나는 2009년 박용택과의 타격왕 경쟁이다. 당시 LG 박용택은 타율 0.372, 롯데 홍성흔은 0.371로 매우 근소한 차이였고, 최종적으로 박용택이 타격왕을 차지했다.

     

    이 과정에서 최종전 출전 여부와 승부 회피 논란이 겹치며 팬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이야기가 이어졌다. 홍성흔 입장에서는 정면 승부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고, 박용택 역시 은퇴할 때까지 관련 별명과 비판을 감당해야 했다. 시간이 지난 뒤 두 선수는 방송에서 당시 상황을 함께 돌아보기도 했다.

    정리 포인트
    이 사건은 홍성흔 개인의 잘못이라기보다 타격왕 타이틀을 둘러싼 팀 전략, 상대 투수 운용, 팬 감정이 한꺼번에 얽힌 논란

    부산에서 받은 사랑과 인터뷰 발언

    홍성흔은 롯데 시절 부산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이후 방송과 인터뷰에서 부산에서 자신이 큰 대우를 받는 사람이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한 적도 있다. 표현만 떼어놓고 보면 다소 과하게 들릴 수 있지만, 롯데 시절 홍성흔이 부산 팬들에게 받은 사랑이 그만큼 컸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다만 이런 자신감 있는 표현은 팬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홍성흔다운 유쾌한 자부심으로 보이고, 다른 팬에게는 과한 자기 표현처럼 느껴질 수 있다. 홍성흔이라는 선수의 캐릭터는 늘 그렇게 호쾌했고, 그만큼 호불호도 분명했다.

     

    두산 복귀와 커리어 마무리

    홍성흔은 2013년 두 번째 FA를 통해 친정팀 두산 베어스로 돌아왔다. 롯데에서 중심타자 이미지를 굳힌 뒤 다시 두산으로 복귀한 것이다. 복귀 후에는 베테랑 지명타자와 1루수 역할을 맡으며 선수 생활 후반을 보냈다.

     

    최종적으로 홍성흔은 통산 2,046안타를 기록했다. “우타자 최초 2,000안타”는 정성훈의 기록이므로 홍성흔에게 붙이면 안 된다. 홍성흔은 KBO 통산 2,000안타 달성자이자 포수 출신 타자 가운데 손꼽히는 누적 기록을 남긴 선수로 정리하는 것이 정확하다.

    통산 성적 정리

    구분 KBO 통산 기록
    경기 1,957경기
    타율 0.301
    안타 2,046안타
    홈런 208홈런
    타점 1,120타점
    득점 872득점

    빽 투 더 그라운드 주장 홍성흔

    홍성흔의 은퇴 후 야구 예능으로는 MBN 빽 투 더 그라운드가 대표적이다. 이 프로그램은 은퇴한 야구 선수들이 다시 팀을 꾸려 경기에 나서는 콘셉트였고, 홍성흔은 탑클래스 팀의 주장으로 출연했다.

     

    홍성흔은 해당 프로그램을 단순 예능이 아닌 진심으로 임하는 야구 프로그램으로 받아들였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현역 시절처럼 선수단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역할이 강했고, 홍성흔 특유의 리더십과 에너지가 다시 드러난 무대였다.

     

    홍성흔이 기억되는 이유

    홍성흔은 포수로 시작해 지명타자로 전환했고, 두산과 롯데에서 모두 강한 인상을 남겼다. 통산 2,046안타, 208홈런, 1,120타점이라는 누적 기록은 포수 출신 타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의미가 크다.

     

    동시에 홍성흔은 감정 표현이 큰 선수였다. 팬들의 사랑도 많이 받았고, 말과 행동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에너지까지 포함해 홍성흔이라는 선수의 색깔이었다. 조용히 기록만 쌓은 선수가 아니라, 더그아웃과 관중석의 온도를 함께 올린 선수였다.

    홍성흔을 한 줄로 표현하면?
    “공격형 포수로 출발해 2,046안타 타자로 완성된, 두산과 롯데 팬 모두에게 강한 기억을 남긴 선수.”

    마무리

    홍성흔의 야구 인생은 포수, 지명타자, 중심타자, 방송인이라는 여러 얼굴로 이어진다. 두산에서 신인왕을 받으며 시작했고, 롯데에서는 부산 팬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다시 두산으로 돌아와서는 2,000안타 고지를 넘기며 긴 커리어를 마무리했다.

     

    박용택과의 타격왕 경쟁 논란, 부산에서 받은 대우를 언급한 인터뷰처럼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장면도 많다. 그래서 홍성흔은 기록만으로 정리하기보다, KBO의 한 시대를 뜨겁게 만든 캐릭터형 스타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참고 자료
    KBO 공식 기록, STATIZ 선수 기록, 2009년 박용택·홍성흔 타격왕 경쟁 관련 보도, MBN 빽 투 더 그라운드 관련 인터뷰를 기준으로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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