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장진, 강속구 우완 마무리의 굴곡진 야구 인생|한화·삼성·롯데를 거친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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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장진은 KBO에서 강속구를 앞세워 선발과 마무리를 모두 경험한 우완 투수다. 처음부터 완성형 마무리로 출발한 선수는 아니었다. 빙그레 이글스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고, 한화 이글스를 거쳐 삼성 라이온즈에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롯데 자이언츠에서도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다.
노장진의 커리어는 한마디로 굴곡이 크다. 1999년 삼성에서 15승을 거두며 선발투수로 존재감을 보였고, 2002년에는 23세이브와 평균자책점 2.54를 기록하며 마무리로 변신했다. 롯데 시절이던 2005년에는 35경기 18세이브, 평균자책점 2.45로 다시 한 번 좋은 모습을 보였다. 다만 부상과 기복, 은퇴 후 논란까지 겹치며 평가가 복잡하게 남은 선수이기도 하다.
기본 프로필
이름: 노장진
생년월일: 1974년 8월 10일
출신: 충청남도 공주시
투타: 우투우타
포지션: 투수
신체: 178cm, 91kg
경력: 공주고 - 빙그레 이글스 - 한화 이글스 - 삼성 라이온즈 - 롯데 자이언츠
프로 입단: 1993년 빙그레 이글스
대표 이미지: 강속구 우완, 선발과 마무리를 모두 경험한 투수
공주고 출신 우완 유망주
노장진은 공주고를 졸업하고 1993년 빙그레 이글스에 입단했다. 공주고 출신 투수로 프로에 들어온 그는 빠른 공을 던질 수 있는 우완 투수로 평가받았다. 당시에는 투수 분업이 지금처럼 세밀하지 않았고, 재능 있는 투수들은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기회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노장진도 그런 흐름 속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초창기에는 제구 기복과 성장통이 있었지만, 빠른 공을 가진 우완이라는 점 때문에 계속 기회를 받을 수 있었다.
빙그레·한화 이글스 시절
노장진은 1993년 빙그레 이글스에서 1군에 데뷔했다. 데뷔 시즌에는 26경기에 등판해 3승 10패 3세이브, 평균자책점 4.41을 기록했다. 결과만 보면 평범했지만, 100이닝을 소화하며 93개의 삼진을 잡았다는 점에서 구위 자체는 눈에 띄었다.
이후 한화 이글스 시절에는 1997년과 1998년에 많은 이닝을 던졌지만 평균자책점은 5점대에 머물렀다. 빠른 공은 있었지만 안정감이 완전히 잡히기 전이었다. 노장진의 커리어가 본격적으로 달라진 시기는 삼성 이적 이후다.
| 초기 경력 | 내용 |
|---|---|
| 1993년 | 빙그레 이글스 데뷔, 3승 10패 3세이브 |
| 1997~1998년 | 한화에서 선발·불펜을 오가며 경험 축적 |
| 특징 | 빠른 공과 탈삼진 능력, 제구 기복 |
삼성 라이온즈 이적과 전환점
노장진이 가장 크게 주목받은 팀은 삼성 라이온즈다. 1999년 삼성에서 그는 선발투수로 좋은 시즌을 보냈다. 33경기에 등판해 15승 9패, 188⅓이닝, 173탈삼진을 기록했다. 승리 5위, 탈삼진 4위, 이닝 5위에 오를 만큼 리그 상위권 선발투수로 활약했다.
1999년은 노장진이 단순한 강속구 유망주에서 실질적인 전력으로 올라선 시즌이었다. 빠른 공을 바탕으로 많은 삼진을 잡아냈고, 삼성 마운드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 1999년 삼성 | 기록 |
|---|---|
| 경기 | 33경기 |
| 승패 | 15승 9패 |
| 이닝 | 188⅓이닝 |
| 탈삼진 | 173탈삼진 |
삼성의 마무리 투수로 변신

2002년부터 노장진은 마무리 투수로 더 강한 인상을 남겼다. 삼성에서 63경기에 등판해 11승 5패 23세이브, 평균자책점 2.54를 기록했다. 선발투수로 15승을 올렸던 투수가 마무리에서도 성공한 것이다.
이 시기 노장진은 빠른 공을 앞세워 경기 후반을 책임졌다. 제구가 완벽한 투수는 아니었지만, 구위가 살아 있는 날에는 타자들이 쉽게 공략하기 어려웠다. 2002년 삼성 불펜에서 노장진의 존재감은 컸다.
| 삼성 마무리 시절 | 주요 기록 |
|---|---|
| 2002년 | 11승 5패 23세이브, ERA 2.54 |
| 2003년 | 9승 10패 21세이브 |
| 특징 | 강속구 기반의 우완 마무리 |
롯데 자이언츠 시절

노장진은 2004년 시즌 중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했다. 롯데에서도 마무리 투수로 활용됐고, 2004년에는 롯데 소속으로 34경기 17세이브를 기록했다. 2005년에는 35경기 18세이브, 평균자책점 2.45를 남기며 다시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롯데 시절 노장진은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2005년은 세이브 18개로 리그 상위권에 들었고, 피안타도 적었다. 다만 2006년 이후 흐름이 길게 이어지지는 못했다.
통산 성적 정리
노장진의 KBO 통산 성적은 406경기, 74승 70패, 89세이브, 9홀드, 평균자책점 4.35다. 통산 1,132⅔이닝을 던졌고, 탈삼진은 983개를 기록했다. 선발과 마무리를 모두 경험한 투수라는 점에서 단순히 세이브 숫자만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 구분 | KBO 통산 기록 |
|---|---|
| 경기 | 406경기 |
| 승 | 74승 |
| 패 | 70패 |
| 세이브 | 89세이브 |
| 홀드 | 9홀드 |
| 이닝 | 1,132⅔이닝 |
| 탈삼진 | 983탈삼진 |
| 평균자책점 | 4.35 |
주요 기록과 의미
- 1993년 빙그레 이글스 데뷔
- 1999년 삼성 라이온즈 15승, 173탈삼진
- 2002년 삼성 라이온즈 23세이브, 평균자책점 2.54
- 2003년 삼성 라이온즈 21세이브
- 2004년 롯데 자이언츠 17세이브
- 2005년 롯데 자이언츠 18세이브, 평균자책점 2.45
- KBO 통산 74승, 89세이브, 983탈삼진
- 선발과 마무리를 모두 경험한 우완 강속구 투수
노장진의 기록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역할 변화다. 1999년에는 선발로 15승을 거뒀고, 2002년 이후에는 마무리로 20세이브 이상을 기록했다. 선발과 마무리 양쪽에서 모두 의미 있는 성과를 낸 투수였다는 점이 노장진의 커리어를 설명하는 핵심이다.
강속구 우완으로 기억되는 이유
노장진은 강한 공을 던지는 우완 투수였다. 전성기에는 빠른 공으로 타자를 윽박지를 수 있었고, 탈삼진 능력도 있었다. 1999년 173탈삼진, 2002년 146탈삼진은 그의 구위가 얼마나 위력적이었는지를 보여준다.
다만 제구가 항상 안정적이었던 투수는 아니었다. 볼넷도 많았고, 기복이 있는 경기 운영 때문에 평가가 갈리기도 했다. 그래서 노장진은 완성형 제구형 투수라기보다, 구위와 힘으로 승부한 우완 강속구 투수에 가까웠다.
노장진을 한 줄로 표현하면?
“선발 15승과 마무리 89세이브를 모두 남긴 굴곡 많은 우완 강속구 투수.”
부상과 하락세
노장진은 좋은 구위를 가진 투수였지만, 커리어 전체가 안정적으로 이어진 선수는 아니었다. 선발로 좋은 시즌을 보낸 뒤 마무리로 전환했고, 이후에도 팀을 옮기며 역할이 바뀌었다. 투수에게 역할 변화와 잦은 등판은 몸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2005년 롯데에서 다시 좋은 마무리 성적을 냈지만, 2006년 이후 커리어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구위가 살아 있던 시기의 임팩트가 컸던 만큼, 더 오래 전성기를 유지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은퇴 후 지도자 생활
은퇴 후 노장진은 대학 야구 지도자로 제2의 야구 인생을 시작했다. 2010년에는 대불대, 현재의 세한대학교 투수코치로 활동한 이력이 알려졌다. 선수 시절 선발과 마무리를 모두 경험한 만큼 투수들에게 전할 수 있는 실전 경험은 많았다.
다만 현역 시절 이름값에 비해 은퇴 후 프로 지도자 활동이 크게 이어진 편은 아니다. 공개적인 활동도 많지 않아 팬들에게는 여전히 선수 시절 이미지가 더 강하게 남아 있다.
사건·논란과 엇갈린 평가
노장진은 은퇴 후 불법 도박 관련 논란으로 이름이 다시 언급되기도 했다. 현역 시절 강속구 투수로 사랑받았던 선수였기 때문에 팬들의 실망도 컸다. 이런 사건은 선수 시절의 기록과 별개로 커리어 이미지에 분명한 오점으로 남는다.
노장진을 평가할 때는 공과 과를 나눠볼 필요가 있다. 선수로서는 선발 15승, 마무리 20세이브 이상 시즌, 통산 89세이브를 남긴 의미 있는 투수였다. 그러나 은퇴 후 논란까지 포함하면 야구 인생 전체가 깔끔하게 정리되는 인물은 아니다.
노장진이 기억되는 이유
노장진은 KBO에서 선발과 마무리를 모두 해낸 우완 투수로 기억된다. 삼성 시절 선발 15승을 기록했고, 이후 마무리로 23세이브와 21세이브 시즌을 만들었다. 롯데에서도 17세이브와 18세이브 시즌을 남겼다.
통산 기록만 보면 압도적인 레전드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구위가 좋았던 시기의 노장진은 분명 상대 타자에게 부담을 주는 투수였다. 빠른 공을 던지는 우완, 선발과 마무리를 모두 맡을 수 있었던 투수, 그리고 굴곡 많은 커리어를 남긴 인물. 이것이 노장진을 기억하게 만드는 지점이다.
마무리
노장진의 야구 인생은 빙그레와 한화에서 시작해 삼성에서 꽃피고, 롯데에서 마무리된 흐름으로 정리할 수 있다. 1999년 삼성에서 15승을 거둔 선발투수였고, 2002년부터는 마무리로 변신해 20세이브 이상 시즌을 만들었다. 롯데에서도 2005년 18세이브와 평균자책점 2.45를 기록하며 마지막 불꽃을 보여줬다.
물론 커리어 전체에는 아쉬움도 많다. 기복, 부상, 은퇴 후 논란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노장진은 한때 KBO에서 강한 공으로 타자를 상대했던 우완 투수였고, 선발과 마무리 양쪽에서 의미 있는 기록을 남긴 선수로 기억된다.
KBO 공식 선수 기록, STATIZ 선수 정보, 주요 야구 보도 자료를 기준으로 정리했습니다. 통산 기록은 KBO 정규시즌 통산 기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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