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스포츠

FA 논란부터 국가대표 영광까지, 이용규의 모든 것

KBO 외야수 이용규 통산 기록과 용규놀이를 정리한 썸네일

 

 

목차

     

    이용규, KBO 리드오프의 한 장면을 만든 선수

    이용규를 떠올리면 먼저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큰 스윙으로 담장을 넘기는 타자는 아니었다. 대신 투수의 공 하나하나를 지독하게 따라붙고, 파울로 걷어내고, 결국 볼넷이나 안타로 살아 나가며 흐름을 바꾸는 선수였다. 그래서 팬들은 그의 타석을 단순한 승부가 아니라 하나의 장면처럼 기억했다. 이른바 ‘용규놀이’다.

     

    프로 커리어는 LG에서 시작했지만, 이름을 확실히 알린 곳은 KIA였다. 이후 한화에서 FA 선수로 긴 시간을 보냈고, 말년에는 키움에서 베테랑 리드오프와 플레잉코치 역할까지 맡았다. 화려한 장타자와는 다른 방식으로 KBO에 발자국을 남긴 선수라고 할 수 있다.

     

    프로야구 이용규

    기본 프로필
    출생: 1985년 8월 26일
    투타: 좌투좌타
    포지션: 외야수
    신체: 170cm, 74kg
    경력: 성동초 - 잠신중 - 덕수정보고 - LG - KIA - 한화 - 키움
    프로 지명: 2004년 LG 트윈스 2차 2라운드 15순위

    출생과 아마 시절

    이용규는 서울에서 태어나 성동초, 잠신중을 거쳐 덕수정보고에서 야구 선수로 성장했다. 고교 시절부터 체격으로 밀어붙이는 유형은 아니었지만, 빠른 발과 컨택 능력, 외야 수비 감각이 좋은 선수로 평가받았다. 프로 지명 당시부터 거포보다는 테이블세터형 외야수에 가까웠고, 실제 프로 커리어도 그 방향으로 완성됐다.

     

    2004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LG 트윈스의 2차 2라운드 지명을 받은 뒤 프로에 입단했다. LG에서 보낸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이후 KIA로 이적하면서 커리어의 방향이 크게 달라졌다. KIA는 젊은 외야 자원이 필요했고, 이용규는 빠르게 1군에서 기회를 잡았다.

     

     

    프로 시절 한눈에 보기

    LG 트윈스: 짧았던 출발점

    이용규의 프로 첫 팀은 LG였다. 2004년 1군에 데뷔했지만 LG에서의 시간은 한 시즌으로 끝났다. 당시에는 아직 완성형 선수라기보다 빠른 발을 가진 유망주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 짧은 시작이 훗날 KBO 대표 리드오프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됐다.

    KIA 타이거즈: 리드오프로 완성된 전성기

    이용규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시기는 KIA 시절이다. 2006년에는 타율 0.318, 154안타, 78득점, 38도루를 기록하며 단숨에 리그 정상급 외야수로 올라섰고, 외야수 골든글러브까지 받았다. 이후에도 KIA의 1번 타자, 국가대표 테이블세터, 빠른 발을 가진 외야수라는 이미지가 굳어졌다.

     

    2009년 KIA의 통합 우승 멤버였다는 점도 빼놓기 어렵다. 당시 KIA는 강한 선발진과 중심타선도 좋았지만, 상위 타순에서 출루하고 흔들어주는 선수들의 역할도 컸다. 이용규는 이 시기 KIA 야구의 속도감을 대표하는 선수였다.

    한화 이글스: 대형 FA와 굴곡의 시간

    2013시즌 뒤 이용규는 FA 자격을 얻어 한화 이글스와 계약했다. 계약 규모는 4년 총액 67억 원으로, 당시 한화가 전력 보강에 강하게 나섰던 흐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영입이었다. 한화에서는 부상과 부진, 포지션 변화, 팀 사정이 겹치며 KIA 시절처럼 매 시즌 폭발적인 성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그래도 이용규의 장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공을 오래 보는 능력, 투수를 지치게 만드는 타석, 한 베이스를 더 가려는 주루 센스는 한화 시절에도 여전했다. 다만 FA 계약 이후 기대치가 워낙 컸기 때문에 평가는 늘 엇갈렸다.

    키움 히어로즈: 베테랑의 재출발

    2020년 한화에서 방출된 뒤 이용규는 키움과 계약하며 다시 기회를 잡았다. 계약 규모는 연봉 1억 원, 옵션 최대 5천만 원을 포함한 총액 1억 5천만 원이었다. 키움 이적 후에는 예상을 깨고 쏠쏠한 활약을 보여줬다. 젊은 선수들이 많은 팀에서 타석 운영, 출루, 주루, 경기 흐름을 읽는 베테랑의 가치를 보여준 것이다.

     

    2025년에는 플레잉코치로 등록되며 선수와 지도자 사이에 걸친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2026년 음주운전 사고가 알려지며 커리어의 마무리는 매우 좋지 않은 형태로 남게 됐다. 기록으로 남긴 성취와 별개로, 이 부분은 분명히 비판받아야 할 대목이다.

    통산 성적 정리

     

     

     

    구분 통산 기록
    경기 2,035경기
    타율 0.295
    안타 2,140안타
    홈런 27홈런
    타점 570타점
    득점 1,213득점
    도루 397도루
    출루율 0.382
    장타율 / OPS 0.362 / 0.744

    숫자만 놓고 보면 이용규의 가치는 홈런이나 장타율보다 안타, 득점, 출루율, 도루에서 드러난다. 통산 2,000안타와 1,200득점을 넘겼고, 도루는 400개에 단 3개 모자란 397개에서 멈췄다. ‘오래 뛰며 많이 나가고, 많이 흔들고, 많이 홈으로 들어온 선수’라는 표현이 가장 잘 맞는다.

    부문별 통산 순위에서 보이는 의미

    이용규는 KBO 역대 누적 기록에서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선수다. 특히 안타, 득점, 도루 부문에서 존재감이 크다. 2,000안타는 KBO에서도 아무나 넘는 기록이 아니고, 1,200득점 역시 오랜 기간 상위 타순에서 꾸준히 출루해야 가능한 기록이다.

    • 통산 안타: 2,140안타로 KBO 역대 상위권
    • 통산 득점: 1,213득점으로 리드오프형 선수의 상징적인 누적 기록
    • 통산 도루: 397도루로 400도루에 매우 근접
    • 통산 WAR: 스탯티즈 기준 50을 넘는 누적 기여도

    특히 2,000안타와 400도루를 동시에 바라볼 수 있었던 선수라는 점은 그의 커리어를 설명할 때 중요하다. 장타력보다 출루와 주루에 무게가 있는 선수였고, 그 스타일을 20년 가까이 유지했다는 점에서 희소성이 있다.

    이용규 하면 빠질 수 없는 ‘용규놀이’

    ‘용규놀이’는 이용규의 별명이라기보다 플레이 스타일 자체를 가리키는 말에 가깝다. 투수가 어렵게 던진 공을 계속 파울로 걷어내고, 스트라이크존을 흔들고, 긴 승부 끝에 출루하는 장면이 반복되면서 생긴 표현이다. 상대 투수 입장에서는 아웃카운트 하나를 잡는 데도 많은 공을 던져야 했고, 수비 시간은 길어졌으며, 다음 타자에게도 부담이 이어졌다.

     

    이 플레이는 기록지에 단순히 ‘볼넷’이나 ‘좌전안타’로 남지만, 경기 흐름에서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선발 투수의 투구 수를 늘리고, 상대 배터리의 집중력을 흔들고, 벤치가 작전을 걸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다. 그래서 이용규의 타석은 팬들에게 답답함과 통쾌함을 동시에 주는 장면이었다.

    용규놀이를 한 줄로 표현하면?
    “쉽게 죽지 않는 1번 타자의 집요한 생존 야구.”

    수상 경력과 대표팀 커리어

    이용규는 리그뿐 아니라 국제대회에서도 자주 이름을 보인 선수였다. 빠른 발, 컨택, 외야 수비, 작전 수행 능력이 필요한 대표팀에서 쓰임새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 2006년 KBO 골든글러브 외야수
    • 2011년 KBO 골든글러브 외야수
    • 2012년 KBO 골든글러브 외야수
    • 2012년 도루 1위
    • 2008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 금메달
    • 2009 WBC 준우승 대표팀
    •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
    • 2015 프리미어12 우승 대표팀

    개인상만 보면 홈런왕이나 타점왕 같은 타이틀과는 거리가 있지만, 이용규의 야구는 팀 경기 안에서 더 빛났다. 국제대회에서도 그런 장점이 잘 맞았다.

     

     

    FA와 계약 흐름

    이용규의 FA 이력에서 가장 큰 장면은 2013시즌 뒤 한화 이적이다. 한화는 이용규와 4년 총액 67억 원에 계약하며 상위 타선과 외야 보강을 노렸다. 당시 기준으로도 큰 규모의 계약이었고, 그래서 이후 성적에 대한 평가도 더 엄격했다.

     

    2017시즌 뒤에는 다시 FA 자격을 얻었지만 신청하지 않고 한화에 남았다. 이 과정에서 연봉이 크게 삭감되며 화제가 됐다. 이후 2020년 한화에서 방출된 뒤 키움과 총액 1억 5천만 원 계약을 맺고 재기에 성공했다. 대형 FA에서 방출 후 재계약까지, 이용규의 커리어는 순탄한 직선보다는 굴곡이 큰 곡선에 가까웠다.

    사건·사고 및 논란

    이용규의 커리어를 정리할 때 좋은 기록만 적기는 어렵다. 한화 시절에는 트레이드 요청 논란으로 팀과 갈등을 빚었고, 이후 출장 정지성 조치와 복귀 과정을 거치며 팬들의 평가가 갈렸다. 베테랑 선수의 권리 주장으로 보는 시선도 있었지만, 팀 운영과 분위기를 흔든 행동이라는 비판도 컸다.

     

    가장 큰 오점은 2026년 음주운전 사고다. 보도에 따르면 이용규는 술을 마신 상태로 운전하다 교통사고를 냈고, 현장 음주 측정 결과 면허취소 수준으로 알려졌다. 키움 구단은 공식 사과와 함께 사안을 엄중하게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이 일로 그의 커리어 말미는 불명예스럽게 기록될 수밖에 없게 됐다.

     

    선수의 누적 기록과 플레이 스타일은 평가받을 부분이지만, 음주운전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중대한 잘못이다. 팬들이 오래 기억한 ‘끈질긴 타자 이용규’와 별개로, 마지막 장면이 아쉽고 무겁게 남는 이유다.

    이용규라는 선수의 야구적 의미

    이용규는 KBO에서 ‘작은 체구의 선수가 어떻게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가’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강한 어깨나 장타력만으로 설명되는 선수가 아니었다. 대신 선구안, 컨택, 커트, 주루, 집중력, 경험으로 자신의 자리를 만들었다.

     

    그의 전성기를 본 팬이라면 기억할 것이다. 1회초 첫 타석에서 10구 넘게 승부하고, 결국 출루한 뒤 도루로 2루를 밟는 장면. 그 장면 하나가 경기 분위기를 바꾸기도 했다. 그래서 이용규는 단순히 통산 안타가 많은 외야수가 아니라, KBO 리드오프의 한 시대를 설명할 때 빠지기 어려운 이름이다.

     

    다만 마지막 평가는 복합적일 수밖에 없다. 그라운드 안에서는 분명 독특하고 강한 색깔을 남겼다. 하지만 그라운드 밖의 잘못은 선수 커리어의 마침표를 흐리게 만들었다. 이용규를 정리한다는 것은 그래서 기록과 장점, 논란과 책임을 함께 보는 일에 가깝다.

    마무리

    이용규는 KIA, 한화, 키움을 거치며 2,000안타와 1,200득점, 397도루를 남긴 선수다. 장타로 경기장을 뒤흔든 선수는 아니었지만, 공 하나를 쉽게 포기하지 않는 타석으로 상대를 괴롭혔다. ‘용규놀이’라는 말이 생긴 것도 우연이 아니다.

     

    KBO를 오래 본 팬들에게 이용규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선수다. 하지만 리드오프, 출루, 커트 능력, 주루 센스라는 키워드로 KBO를 돌아볼 때 그의 이름은 반드시 한 번쯤 등장한다. 좋았던 장면은 기록으로 남았고, 잘못된 마지막 장면은 경고로 남았다. 그 양쪽을 함께 봐야 이용규라는 선수를 제대로 정리할 수 있다.

    참고 자료
    KBO 공식 선수 기록실, 스탯티즈 선수 기록, 연합뉴스·MBC 등 주요 보도 자료를 기준으로 정리했습니다. 통산 순위는 집계 기준과 업데이트 시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