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수창 1편, 18연패의 불운을 캐릭터로 바꾼 투수|LG·넥센·롯데·한화 선수 생활
목차
심수창은 KBO 팬들에게 아주 독특하게 기억되는 투수다. 통산 기록만 놓고 보면 리그를 지배한 에이스는 아니었다. 하지만 18연패라는 불명예 기록, 잘생긴 외모, 예능감, 은퇴 후 방송 캐릭터까지 더해지며 오히려 강한 존재감을 남겼다.
선수 심수창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따라오는 단어는 18연패다. 하지만 이 기록을 단순히 “못해서 진 기록”으로만 보면 정확하지 않다. 연패 기간 중에는 잘 던지고도 타선 지원을 받지 못한 경기가 있었고, 퀄리티스타트를 하고도 패전투수가 된 경기까지 있었다. 실제로 2011년 삼성전에서는 6이닝 3실점 퀄리티스타트를 하고도 2-3으로 패하며 18연패를 기록했다.
기본 프로필
이름: 심수창
생년월일: 1981년 2월 9일
투타: 우투우타
포지션: 투수
출신학교: 고명초 - 서울이수중 - 배명고 - 한양대
프로 입단: 2000년 LG 트윈스 2차 11라운드 83순위
활약 기간: 2004년 ~ 2019년
소속팀: LG 트윈스 - 넥센 히어로즈 - 롯데 자이언츠 - 한화 이글스 - LG 트윈스
대표 별명: 쉼창, DJ 쉼창, 18연패의 사나이
은퇴 후: 야구 해설위원, 방송인, 유튜브 크리에이터
배명고·한양대를 거친 LG 지명 투수

심수창은 배명고와 한양대를 거쳐 LG 트윈스에 지명됐다. 지명 순위만 보면 큰 기대를 받은 특급 유망주라고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좋은 체격과 투수로서의 가능성을 갖고 있었고, 2004년 LG에서 1군 무대에 데뷔했다.
LG 시절 심수창은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기회를 받았다. 공 자체가 아주 압도적인 강속구형 투수는 아니었지만, 선발로 긴 이닝을 버틸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준 시기도 있었다. 다만 팀 상황과 개인 기복이 겹치며 확실한 에이스로 자리 잡지는 못했다.
LG 시절과 선발투수 심수창
심수창은 LG에서 선발투수로 기회를 받으며 이름을 알렸다. 당시 LG는 투수진과 팀 전력이 안정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시기였고, 심수창 역시 좋은 경기와 아쉬운 경기가 반복됐다. 그래도 팬들에게 얼굴을 알린 건 이 시기였다.
심수창은 마운드 위에서 감정 표현이 큰 투수는 아니었다. 다만 경기 결과가 따라오지 않으면서 점점 “불운한 투수” 이미지가 강해졌다. 이 이미지는 훗날 18연패와 연결되며 그의 선수 인생 전체를 설명하는 대표 키워드가 됐다.
| LG 시절 심수창 | 내용 |
|---|---|
| 데뷔 | 2004년 LG 트윈스 |
| 역할 | 선발과 불펜을 오간 우완 투수 |
| 이미지 | 승운이 따르지 않은 불운한 투수 |
2009년 심논개 사건, 조인성과의 마운드 언쟁


심수창의 LG 시절을 이야기할 때 빼놓기 어려운 장면이 있다. 바로 2009년 포수 조인성과의 마운드 언쟁, 이른바 심논개 사건이다. 경기 도중 투수와 포수가 마운드 위에서 언쟁을 벌이는 장면이 중계 화면에 그대로 잡히며 큰 화제가 됐다.
투수와 포수는 한 경기를 함께 책임지는 배터리다. 그래서 둘 사이의 의견 충돌은 경기 중에도 충분히 생길 수 있다. 문제는 그 장면이 공개적으로 드러났다는 점이었다. 당시 LG는 경기 후 두 선수에게 100만 원의 벌금을 부과했고, 심수창과 조인성을 모두 2군으로 내려보냈다. 이 사건은 단순한 배터리 갈등을 넘어 LG 팬덤 안에서 큰 밈으로 번졌다.
여기서 생긴 별명이 심논개다. 당시 일부 LG 팬들은 심수창이 조인성과 함께 2군으로 내려가며 팀 분위기를 바꾸는 계기가 됐다고 해석했다. 임진왜란 때 왜장을 끌어안고 강으로 뛰어든 논개에 빗대어, 심수창이 자신을 희생해 조인성까지 2군으로 내려보냈다는 식의 팬덤식 해석이 나온 것이다. 물론 이는 실제 의도라기보다 당시 팬들이 만든 풍자와 패러디에 가깝다.
심논개 별명 정리
심수창과 조인성이 2009년 경기 중 언쟁 후 동반 2군행을 당하자, 팬들이 심수창을 ‘논개’에 빗대어 만든 별명이다. 실제 사건의 본질은 배터리 간 갈등이었고, ‘심논개’는 팬덤에서 만들어진 풍자성 별명이다.
2010년 화해 사진, 밈이 된 배터리
심논개 사건은 당시에는 팀 분위기 논란으로 번졌지만, 시간이 지나며 심수창과 조인성 사이의 대표 에피소드가 됐다. 이후 두 사람은 화해했고, 이 장면 역시 야구팬들 사이에서 오래 회자됐다. 2020년 방송에서도 심수창은 조인성과 마운드 위에서 싸운 일과 화해 사진의 전말을 직접 이야기했다.
2010년 화해 사진은 팬들에게 또 하나의 밈처럼 남았다. 한때는 마운드에서 언쟁을 벌였던 투수와 포수가 웃으며 화해한 모습이 알려지면서, ‘심논개 사건’은 단순한 갈등이 아니라 심수창 특유의 다사다난한 야구 인생을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됐다.
이후 두 사람은 한화 이글스에서 다시 같은 팀으로 만나기도 했다. 2015년 조인성이 한화로 이적하면서 심수창과 재회하게 됐고, 당시 기사에서도 두 사람의 과거 마운드 언쟁과 재회가 함께 언급됐다. 즉, 심수창과 조인성의 관계는 단순한 불화로 끝난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며 야구팬들이 계속 이야기하는 배터리 서사로 남은 셈이다.
| 구분 | 내용 |
|---|---|
| 2009년 | LG 경기 중 심수창과 조인성이 마운드에서 언쟁 |
| 징계 | 두 선수 모두 2군행과 벌금 징계 |
| 별명 | 팬덤에서 심수창에게 ‘심논개’라는 별명 부여 |
| 이후 | 화해 사진과 방송 에피소드로 재조명 |
| 2015년 | 한화에서 다시 같은 팀으로 재회 |
KBO 최다 개인 18연패
심수창의 선수 생활에서 가장 유명한 기록은 개인 18연패다. 2009년 6월부터 넥센으로 이적한 2011년 8월까지 승리를 기록하지 못하며 KBO 개인 최다 연패 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이 기록은 은퇴 후에도 심수창을 설명하는 가장 강한 키워드가 됐다.
하지만 18연패를 모두 투수 개인의 부진으로만 보는 것은 무리다. 연패 기간 중 선발 등판 15경기에서 퀄리티스타트가 5번 있었다는 분석도 있고, 당시 소속팀 전력이 좋지 않았다는 점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심수창이 스톡킹과 여러 방송에서 이 기록을 자학 개그로 활용했지만, 실제 내용은 꽤 복잡하다.
18연패의 핵심
심수창의 18연패는 불명예 기록이지만, 단순히 못 던져서만 만들어진 기록은 아니다. 타선 지원 부족, 팀 전력, 선발투수 승패 기록의 구조까지 함께 봐야 한다.
잘 던지고도 졌던 경기들
심수창의 18연패가 지금도 회자되는 이유는 기록 자체의 충격도 있지만, 그 안에 불운한 경기가 많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2011년 8월 3일 삼성전이 있다. 당시 심수창은 넥센 이적 사흘 만에 선발 등판해 6이닝 3실점을 기록했다. 선발투수 기준으로는 퀄리티스타트였다. 그러나 타선이 2점에 그치며 2-3으로 패했고, 심수창은 18연패째를 기록했다.
이런 경기들이 있었기 때문에 심수창의 18연패는 단순한 조롱거리가 아니라, 야구에서 투수의 승패 기록이 얼마나 팀 상황에 영향을 받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도 자주 언급된다.
| 18연패를 보는 시선 | 설명 |
|---|---|
| 불명예 기록 | KBO 개인 최다 연패로 오래 회자됨 |
| 불운의 기록 | 퀄리티스타트 후 패전 등 타선 지원 부족 경기 존재 |
| 방송 캐릭터 | 은퇴 후 본인이 개그 소재로 승화 |
넥센 히어로즈 이적
심수창은 2011년 LG를 떠나 넥센 히어로즈로 이적했다. 팀을 바꾸면 분위기도 바뀔 수 있지만, 연패 흐름은 쉽게 끊기지 않았다. 넥센 이적 직후에도 잘 던지고 패하는 경기가 이어지며 18연패 기록이 완성됐다.
넥센 시절은 심수창에게 큰 전환점이었다. LG에서 쌓인 이미지와 연패 기록을 끊어내야 했고, 새 팀에서 다시 투수로 살아남아야 했다. 이후 심수창은 선수 생활을 이어가며 롯데와 한화까지 거치게 된다.
롯데 자이언츠 시절
심수창은 이후 롯데 자이언츠에서도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롯데에서는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투수진의 한 자리를 맡았다. 전성기 에이스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여러 팀을 거치며 버틴 프로 투수의 커리어를 보여준 시기다.
롯데 팬들에게 심수창은 압도적인 성적보다 캐릭터가 강한 선수였다. 잘생긴 외모, 독특한 입담, 그리고 이미 널리 알려진 18연패 서사가 함께 따라다녔다. 그래서 선수 시절보다 은퇴 후 방송에서 더 큰 캐릭터가 될 가능성을 이미 보여주고 있었다.
한화 이글스 시절

심수창은 한화 이글스에서도 뛰었다. 한화 시절에는 베테랑 투수로서 불펜과 선발을 오가며 활용됐다. 한화는 이 시기 투수진 운영에 어려움을 겪던 팀이었고, 심수창 같은 경험 있는 투수가 필요했다.
한화 시절 심수창은 팀의 핵심 에이스라기보다, 여러 역할을 맡는 베테랑 투수에 가까웠다. 선수로서 긴 시간을 버텼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 팀에서만 뛴 스타 선수는 아니었지만, LG·넥센·롯데·한화를 거친 흐름은 심수창이 얼마나 오래 프로 무대에서 살아남았는지를 보여준다.
다시 LG로, 3,607일 만의 감격 승리
심수창은 2019년 다시 LG 트윈스로 돌아왔다. 그리고 2019년 4월 30일 kt 위즈전에서 구원 등판해 승리투수가 됐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는 LG 유니폼을 입고 2009년 6월 14일 이후 3,607일 만에 거둔 승리였다.
이 승리는 심수창 커리어에서 상징적인 장면이다. 대단한 완봉승이나 포스트시즌 승리는 아니었지만, 오랜 시간 여러 팀을 거쳐 다시 LG로 돌아와 승리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팬들에게 의미 있게 받아들여졌다.
통산 성적 정리
심수창은 2004년부터 2019년까지 KBO에서 활동했다. LG, 넥센, 롯데, 한화, 다시 LG까지 여러 팀을 거쳤고,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커리어를 이어갔다. STATIZ 기준으로 심수창은 2004년부터 2019년까지 활약한 투수로 정리된다.
| 구분 | 내용 |
|---|---|
| 활약 기간 | 2004년 ~ 2019년 |
| 소속 팀 | LG - 넥센 - 롯데 - 한화 - LG |
| 대표 기록 | KBO 개인 18연패 |
| 상징 장면 | 2019년 LG 복귀 후 3,607일 만의 승리 |
심수창이 선수로 남긴 의미
심수창은 기록만 보면 KBO를 대표하는 대투수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심수창의 선수 인생은 야구가 기록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18연패라는 불운, 여러 팀을 거치며 버틴 시간, 다시 LG로 돌아와 거둔 승리까지 이야기가 많은 선수였다.
또한 심수창은 은퇴 후 자신의 불명예 기록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캐릭터로 바꿨다. 이 점이 그를 더 특별하게 만든다. 선수 시절의 아픔이 방송인의 자산이 된 드문 사례이기도 하다.
1편 한 줄 요약
심수창은 KBO 개인 18연패라는 불운한 기록을 남겼지만, 여러 팀을 거치며 16년 동안 버틴 우완 투수였다.
2편에서 이어질 이야기
2편에서는 은퇴 후 심수창을 다룬다. 스톡킹과 유튜브, DJ 쉼창 캐릭터, 최강야구 제작 초기 참여, 최강 몬스터즈 최초 방출, 이후 JTBC판 최강야구 복귀, 그리고 불꽃야구 관련 갈등설과 공개적으로 확인된 사실관계를 정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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