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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진 (1편), KBO 최초 100승 투수|삼성의 원조 에이스

 

김시진 (1편), KBO 최초 100승 투수|삼성의 원조 에이스

김시진 1편, KBO 최초 100승 투수|삼성의 원조 에이스와 1985년 25승

 

목차

     

    김시진은 한국 프로야구 초창기를 대표하는 우완 에이스다. 삼성 라이온즈의 원조 에이스로 활약했고, 1987년에는 KBO리그 역사상 최초로 개인 통산 100승 고지를 밟았다.

     

    1985년에는 25승과 201탈삼진을 기록하며 삼성의 전·후기 통합 우승을 이끌었다. 선동열이 본격적으로 리그를 지배하기 전,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우완투수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았던 이름이 김시진이다.

    기본 프로필
    이름: 김시진
    생년월일: 1958년 3월 20일
    출신: 경상북도 포항시
    투타: 우투우타
    포지션: 투수
    출신학교: 포항초 - 포항중 - 대구상고 - 한양대
    프로 입단: 1983년 삼성 라이온즈
    선수 경력: 삼성 라이온즈 - 롯데 자이언츠
    대표 기록: KBO 최초 통산 100승, 최소경기 100승, 통산 124승

    대구상고와 한양대를 거친 국가대표 투수

    김시진은 대구상고와 한양대를 거치며 아마추어 야구의 정상급 투수로 성장했다. 프로야구 출범 전부터 국가대표 투수로 국제대회를 경험했고, 1982년 서울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우승 멤버로도 이름을 남겼다.

     

    당시 한국 야구는 실업야구와 대학야구를 중심으로 국가대표가 구성되던 시기였다. 김시진은 이 무대에서 빠른 공과 안정적인 제구력을 인정받았고, 프로 출범 이후 삼성의 핵심 전력으로 합류했다.

     

    1983년 삼성 라이온즈 입단

    삼성 라이온즈 김시진
    삼성 라이온즈 김시진_나무위키

     

    김시진은 1983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데뷔 첫해부터 17승을 기록하며 삼성 선발진의 중심으로 올라섰다. 프로 적응 기간이 거의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완성된 투수였다.

     

    당시 삼성에는 장효조, 이만수, 배대웅, 오대석 등 좋은 선수들이 많았지만, 마운드의 중심은 김시진이었다. 선발과 구원을 가리지 않고 많은 이닝을 책임지는 당시 투수 운용 속에서 김시진은 매년 두 자릿수 승수를 올렸다.

    1984년 한국시리즈와 최동원

    삼성 투수 김시진
    삼성 투수 김시진_미디어스

     

    김시진의 선수 생활에서 가장 아픈 장면 중 하나는 1984년 한국시리즈다. 삼성은 정규시즌 전기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한국시리즈에 올랐고, 후기리그 우승팀 롯데 자이언츠와 맞붙었다.

     

    삼성의 에이스는 김시진이었고, 롯데의 에이스는 최동원이었다. 두 선수의 맞대결은 한국 프로야구 초창기를 대표하는 에이스 경쟁이었다. 하지만 최동원이 한국시리즈에서 혼자 4승을 책임지는 전설적인 활약을 펼치면서 롯데가 우승을 차지했다.

     

    김시진은 한국시리즈 통산 승리 없이 7패를 기록했다. 정규시즌에서는 누구보다 강했던 에이스였지만, 한국시리즈에서는 승리와 인연을 맺지 못했다. 이 때문에 김시진에게는 ‘비운의 에이스’라는 이미지도 따라다녔다.

    1985년 25승, 김시진 최고의 시즌

    김시진의 커리어 하이는 1985년이다. 이 시즌 김시진은 47경기에 등판해 25승 5패 10세이브, 평균자책점 2.00, 201탈삼진을 기록했다.

     

    선발투수로 25승을 올리면서 구원 등판으로 10세이브까지 기록했다는 점에서 당시 투수 운용이 얼마나 강도 높았는지 알 수 있다. 김시진은 다승과 탈삼진 부문 정상에 올랐고, 삼성은 전기리그와 후기리그를 모두 석권해 한국시리즈 없이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1985년 김시진 기록
    등판 47경기
    승패 25승 5패
    세이브 10세이브
    평균자책점 2.00
    탈삼진 201개
    팀 성적 삼성 전·후기 통합 우승

    1985년의 의미
    김시진은 25승과 201탈삼진을 기록하며 삼성의 통합 우승을 이끌었다. KBO 초창기 최고의 우완 에이스였음을 증명한 시즌이다.

     

    선동열 등장과 삼성 에이스 계보

    1985년 삼성에는 또 한 명의 거물 투수가 합류했다. 바로 선동열이다. 선동열은 프로 데뷔 후 압도적인 구위로 빠르게 리그 최고의 투수로 성장했다.

     

    김시진이 삼성의 원조 에이스였다면, 선동열은 그 뒤를 이어 리그를 지배한 절대적인 에이스였다. 두 선수의 시기가 겹치면서 삼성은 강력한 마운드를 구축했다.

     

    선동열의 등장으로 김시진의 존재감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김시진은 1987년에도 23승을 기록하며 자신의 힘으로 최초 100승 기록을 완성했다. 선동열과 김시진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삼성 투수 역사를 만든 에이스였다.

    KBO 최초 통산 100승

    1987년 10월 3일 잠실 OB 베어스전에서 김시진은 개인 통산 100승을 달성했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의 100승 투수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김시진은 프로 데뷔 5시즌, 186경기 만에 100승에 도달했다. 이 최소경기 100승 기록은 지금도 김시진을 상징하는 기록으로 남아 있다. 5시즌 동안 매년 평균 20승을 거둔 셈이기 때문에 당시 김시진의 승리 페이스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

     

    당시 최초 100승 경쟁 상대는 롯데의 최동원이었다. 1986년까지 김시진이 77승, 최동원이 75승으로 팽팽했지만, 1987년 김시진이 23승을 추가하며 먼저 100승에 도달했다.

    최동원과 맞트레이드된 두 에이스

    김시진-최동원 트레이드
    김시진-최동원 트레이드_나무위키

     

    1988시즌 종료 후 한국 프로야구를 뒤흔든 대형 트레이드가 발표됐다. 삼성 김시진과 롯데 최동원이 포함된 4대3 트레이드였다.

     

    김시진과 최동원은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었고, 최초 100승을 두고 경쟁했던 라이벌이었다. 그런데 두 선수가 서로 상대 팀 유니폼을 입게 된 것이다.

     

    트레이드 배경에는 당시 선수협 파동과 구단의 갈등이 있었다. 최동원은 선수협 창립을 주도한 뒤 롯데와 관계가 악화됐고, 김시진 역시 삼성에서 롯데로 이동했다. 단순한 전력 교환을 넘어 당시 프로야구의 선수 권리와 구단 문화가 얽힌 상징적인 트레이드였다.

     

    롯데 자이언츠 선수 시절

    김시진은 1989년부터 롯데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었다. 하지만 삼성 시절처럼 압도적인 성적을 내지는 못했다. 이미 많은 이닝을 던진 뒤였고, 부상과 구위 저하도 겹쳤다.

     

    롯데에서는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베테랑 투수 역할을 맡았다. 1992년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간 뒤 현역에서 은퇴했다. 선수 생활의 마지막 팀은 롯데였고, 훗날 감독으로도 롯데에 돌아오게 된다.

    선수 통산 성적

    구분 KBO 통산 기록
    경기 273경기
    124승
    73패
    세이브 16세이브
    평균자책점 3.12
    대표 기록 KBO 최초·최소경기 통산 100승

    1편 마무리

    선수 김시진은 삼성 라이온즈의 원조 에이스였다. 1985년 25승과 201탈삼진으로 리그를 지배했고, 1987년에는 KBO 최초의 통산 100승 투수가 됐다.

     

    최동원과의 경쟁, 선동열의 등장, 삼성과 롯데의 대형 트레이드까지 김시진의 선수 생활에는 한국 프로야구 초창기의 중요한 장면이 담겨 있다.

    1편 한 줄 요약
    김시진은 1985년 25승과 KBO 최초 100승을 남긴 삼성 라이온즈의 원조 우완 에이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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