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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섭 (1편),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그 야수 l LA다저스

최희섭 (1편),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그 야수 l LA다저스

최희섭 1편,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그 야수|빅초이의 다저스 3홈런과 타격폼 변화

 

목차

     

    최희섭은 한국 야구 역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선수다. 박찬호가 한국인 메이저리거의 길을 열었다면, 최희섭은 한국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야수 가운데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타석에 선 선수였다.

     

    시카고 컵스의 대형 1루수 유망주로 주목받았고, 플로리다 말린스와 LA 다저스를 거치며 메이저리그 통산 40홈런을 기록했다. 다저스 시절에는 한 경기 3홈런과 홈런더비 출전이라는 강렬한 장면도 남겼다.

     

    그러나 뇌진탕, 플래툰 기용, 타격폼 수정, 빠른 공과 좌완투수 상대 약점, 잦은 부상이 겹치며 기대만큼 긴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이어가지는 못했다. 최희섭의 미국 생활은 성공과 아쉬움이 동시에 남은 도전이었다.

    최희섭 기본 프로필
    이름: 최희섭
    생년월일: 1979년 3월 16일
    투타: 좌투좌타
    포지션: 1루수, 지명타자
    신체: 192cm, 123kg
    출신학교: 송정동초 - 충장중 - 광주제일고 - 고려대 중퇴
    미국 진출: 1999년 시카고 컵스 입단
    MLB 경력: 시카고 컵스 - 플로리다 말린스 - LA 다저스
    KBO 경력: KIA 타이거즈
    대표 별명: 빅초이, 초이
    대표 기록: 한국인 최초 MLB 야수, MLB 통산 40홈런, KBO 통산 100홈런

    광주일고의 대형 좌타자

     

     

    최희섭은 광주일고 시절부터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린 대형 좌타자였다. 190cm가 넘는 체격과 강한 힘을 갖췄고, 투수보다 타자로서 더 높은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광주일고 졸업 후 고려대에 진학했지만 미국 프로야구 도전을 선택했다. 당시 한국인 선수의 미국 진출은 대부분 투수 중심이었기 때문에, 타자로 메이저리그를 노린 최희섭의 선택은 상당히 과감했다.

    1999년 시카고 컵스 입단

    시카고컵스 최희섭
    시카고컵스 최희섭_경상일보

     

    최희섭은 1999년 시카고 컵스와 계약하며 미국 생활을 시작했다. 마이너리그 첫 시즌부터 높은 출루율과 장타력을 보여주며 컵스의 주요 유망주로 성장했다.

     

    최희섭은 단순히 힘만 좋은 타자가 아니었다. 스트라이크존을 잘 판단했고 볼넷을 많이 얻었다. 미국 스카우트들은 큰 체격, 선구안, 좌타 장타력을 갖춘 1루수라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

     

    마이너리그에서 단계적으로 성장한 최희섭은 2002년 시카고 컵스 소속으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한국인 야수가 메이저리그 경기에 출전한 첫 사례였다.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그 야수

    최희섭은 2002년 빅리그에 데뷔하며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야수가 됐다. 박찬호, 조진호, 김병현 등 투수들이 먼저 미국 무대를 밟았지만 야수는 최희섭이 처음이었다.

     

    데뷔 시즌에는 출전 기회가 많지 않았지만 메이저리그 홈런도 기록했다. 한국 야수가 미국 투수를 상대로 홈런을 칠 수 있다는 장면 자체가 당시 국내 팬들에게 큰 의미였다.

     

    최희섭은 체격 때문에 자연스럽게 ‘빅초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미국 중계진과 팬들도 그를 Big Choi라고 불렀고, 이 별명은 한국 복귀 후에도 최희섭을 대표하는 이름으로 남았다.

    빅초이라는 별명
    192cm의 큰 체격과 강한 장타력을 가진 한국인 1루수라는 의미에서 붙었다. 미국과 한국 모두에서 최희섭을 상징하는 대표 별명이 됐다.

    2003년 주전 경쟁과 뇌진탕 사고

    2003년 최희섭은 시카고 컵스의 주전 1루수 후보로 본격적인 기회를 받았다. 시즌 초반 홈런과 볼넷을 꾸준히 기록하며 메이저리그에서 자리를 잡는 듯했다.

     

    그러나 6월 뉴욕 양키스전에서 큰 사고가 발생했다. 최희섭은 제이슨 지암비의 내야 뜬공을 잡으려고 앞으로 달려 나갔고, 같은 공을 쫓던 투수 케리 우드와 충돌했다.

     

    충돌 후 최희섭은 뒤로 넘어지며 머리를 그라운드에 강하게 부딪쳤다. 의식을 잃은 채 구급차로 병원에 이송됐고 뇌진탕 진단을 받았다.

     

    최희섭은 약 3주 뒤 복귀했지만 사고 이전의 타격감을 되찾지 못했다. 강한 타구에 대한 심리적인 부담과 실전 공백이 겹쳤고, 시즌 후 컵스는 최희섭을 플로리다 말린스로 트레이드했다.

    데릭 리와 트레이드돼 플로리다로

     

     

    2003시즌 종료 후 시카고 컵스는 최희섭을 플로리다 말린스로 보냈다. 컵스는 플로리다의 주전 1루수 데릭 리를 영입했고, 최희섭은 말린스의 새 1루수 후보가 됐다.

     

    결과적으로 데릭 리는 컵스에서 리그 정상급 타자로 성장했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시간이 흐른 뒤 컵스가 성사한 성공적인 트레이드 중 하나로 평가되기도 했다.

     

    최희섭에게도 플로리다 이적은 기회였다. 기존 주전이 떠난 자리를 이어받으며 컵스 시절보다 안정적인 출전 기회를 얻었다.

    플로리다에서 보여준 가능성

    최희섭은 2004년 플로리다에서 95경기에 출전해 타율 0.270, 15홈런, 40타점을 기록했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안정적인 공격력을 보여준 시기였다.

     

    볼넷을 얻는 능력과 장타력이 함께 살아났고, 1루수로 꾸준히 출전하면서 경기 감각도 올라왔다. 휴스턴전에서는 빠른 발의 선수가 아님에도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까지 기록했다.

     

    하지만 플로리다는 시즌 도중 대형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최희섭은 브래드 페니 등과 함께 LA 다저스로 이동했고, 다저스의 스타 포수 폴 로두카가 플로리다로 향했다.

    LA 다저스 이적과 갑자기 줄어든 출전

    다저스 이적 당시 최희섭은 플로리다에서 타율 0.270과 15홈런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적 후에는 기존과 같은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다.

     

    다저스는 최희섭을 우완투수 상대 1루수로 활용하고, 좌완투수가 선발로 나오면 올메도 사엔스를 기용하는 플래툰 방식을 사용했다. 타석의 연속성이 끊기면서 최희섭의 타격감도 크게 흔들렸다.

     

    2004년 다저스 이적 후 31경기에서는 타율 0.161에 그쳤다. 플로리다에서 보여준 상승세가 트레이드 이후 급격히 끊긴 것이다.

    2005년 다저스의 비교적 곧게 선 타격 자세

    LA다저스 최희섭

     

    LA 다저스 시절 최희섭의 타격 사진을 보면 상체를 비교적 세우고, 다리를 크게 들지 않은 채 배트를 높게 드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완전히 꼿꼿하게 선 자세라기보다는 무릎을 가볍게 굽히면서도 상체의 움직임을 최소화한 준비 자세였다. 큰 체격의 타자가 불필요한 움직임을 줄이고 공을 오래 보기 위한 방식이었다.

     

    장점은 선구안이었다. 최희섭은 공을 깊게 보고 볼넷을 얻는 능력이 좋았다. 반면 스트라이크 초반부터 적극적으로 치지 않아 좋은 공을 놓친다는 비판도 받았다.

    미네소타전 한 경기 3홈런

    2005년 6월 12일 최희섭은 미네소타 트윈스를 상대로 한 경기에서 홈런 3개를 쳤다. 다저스 구단 역사에서도 흔치 않은 기록이었고, 아시아계 메이저리거 최초의 한 경기 3홈런이었다.

     

    이날 최희섭은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강한 타구를 외야 담장 밖으로 보냈다. 한국 팬들에게는 최희섭 메이저리그 커리어의 가장 상징적인 경기로 남았다.

     

    최희섭은 이 경기를 포함해 4경기에서 홈런 7개를 몰아쳤다. 짧은 기간만 놓고 보면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뜨거운 타자 중 한 명이었다.

     

     

    홈런더비에 출전한 빅초이

    최희섭은 2005년 올스타전 홈런더비에도 출전했다. 정규 올스타로 뽑힌 것은 아니었지만 국가별 선수를 초청한 홈런더비 구성에 따라 대한민국 대표로 참가했다.

     

    홈런더비에서는 기대만큼 많은 홈런을 기록하지 못했지만, 한국인 타자가 메이저리그 홈런더비 무대에 등장했다는 것 자체가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잘 치고도 이어지지 않은 선발 기회

    최희섭이 4경기에서 홈런 7개를 친 뒤 많은 팬은 주전 1루수로 자리를 잡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다저스의 짐 트레이시 감독은 플래툰 운용을 크게 바꾸지 않았다.

     

    홈런 몰아치기 직후 무안타 경기가 나오자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됐고, 시즌 후반에는 대타 출전이 늘었다. 최희섭은 규칙적인 타석을 보장받지 못했고 좌완투수 상대 기회도 제한됐다.

     

    2005년 최종 성적은 타율 0.253, 15홈런, 42타점이었다. 출루율은 나쁘지 않았지만 구단이 기대한 확실한 주전 1루수로 자리 잡지는 못했다.

    타격폼을 바꿔서 망했다는 말은 사실일까?

    최희섭의 커리어를 이야기할 때 “다저스에서 거의 서서 치다가 타격폼을 바꾼 뒤 망했다”는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결론부터 말하면 절반은 맞고 절반은 단순화된 해석이다.

     

    최희섭은 2005시즌이 끝난 뒤 레지 스미스와 함께 타격폼 교정을 진행했다. 기존 스탠스는 앞발이 안쪽으로 닫히는 크로스 스탠스 성향이 강해 몸쪽 공에 대응하기 어려웠고, 바깥쪽 공도 충분히 밀어치지 못한다는 분석을 받았다.

     

    새로운 폼에서는 타석 위치와 발의 방향을 조정하고, 상체와 하체가 한 번에 힘을 쓸 수 있도록 스윙을 단순화했다. 최희섭 본인도 새 폼이 편하고 공략할 수 있는 코스가 넓어졌다고 만족감을 보였다.

     

    문제는 새 폼을 실제 메이저리그 경기에서 충분히 시험할 기회가 없었다는 점이다. 다저스는 노마 가르시아파라를 영입했고 최희섭의 자리는 더 좁아졌다. 2006년 보스턴으로 이동한 뒤에도 트리플A에 머물렀고 부상까지 겹쳤다.

     

    따라서 타격폼 수정이 최희섭 고유의 타이밍과 리듬을 흔든 요소였다고는 볼 수 있다. 그러나 폼 하나 때문에 메이저리그 커리어가 끝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플래툰 기용, 좌완 상대 약점, 빠른 공 대처, 부상, 로스터 경쟁이 함께 작용했다.

    구분 내용
    다저스 기본 자세 상체를 비교적 세우고 다리를 크게 들지 않는 정적인 준비 자세
    기존 약점 크로스 스탠스로 몸쪽 공에 막히고 바깥쪽 공 공략 범위가 제한됨
    수정 목적 타석 위치와 스탠스를 열어 공략 가능한 코스를 넓히기 위함
    실제 결과 수정폼을 빅리그에서 충분히 검증하지 못하고 로스터 경쟁과 부상으로 기회 상실
    종합 평가 폼 수정은 여러 원인 중 하나이며 몰락의 유일한 원인은 아님

    타격폼 팩트체크
    최희섭은 잘 치던 자세를 구단이 무조건 뜯어고쳐 망한 것이 아니다. 이미 드러난 몸쪽·바깥쪽 공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수정했지만, 출전 기회 감소와 부상 때문에 새 폼을 메이저리그에서 충분히 검증하지 못했다.

    보스턴 이적과 빅리그 커리어 종료

    보스턴 레드삭스 최희섭
    보스턴 레드삭스 최희섭_한겨례

     

    다저스는 2006시즌을 앞두고 노마 가르시아파라를 영입했다. 최희섭의 1루수 경쟁은 더욱 어려워졌고, 결국 웨이버 절차를 거쳐 보스턴 레드삭스로 이동했다.

     

    보스턴에서도 메이저리그 기회를 얻지 못하고 트리플A 포터킷에서 뛰었다. 타율 0.207, 8홈런, 27타점에 머물렀고 잦은 부상까지 겹치며 방출대기 조치를 받았다.

     

    이후 탬파베이 조직과 계약했지만 메이저리그로 복귀하지 못했다. 2005년 다저스에서의 시즌이 최희섭의 마지막 메이저리그 시즌으로 남았다.

    MLB 통산 성적

    구분 MLB 통산 기록
    경기 363경기
    안타 220안타
    홈런 40홈런
    타점 120타점
    타율 0.240
    출루율 0.349
    장타율 0.437
    OPS 0.786

    1편 마무리

     

    플로리다에서는 주전 가능성을 보여줬고, LA 다저스에서는 한 경기 3홈런과 홈런더비 출전이라는 상징적인 장면을 남겼다.

     

    타격폼 수정은 메이저리그 실패의 단일 원인이 아니었다. 뇌진탕, 플래툰 기용, 약점 노출, 출전 기회 감소, 부상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1편 한 줄 요약
    최희섭은 한국인 야수 최초로 메이저리그를 개척했고, 다저스에서 한 경기 3홈런을 기록했지만 반복된 폼 수정과 불규칙한 기용, 부상이 겹치며 빅리그 커리어가 짧아진 빅초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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