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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섭 (2편), KIA로 돌아온 빅초이|2009 우승

최희섭 2편, KIA로 돌아온 빅초이|2009 우승

최희섭 2편, KIA로 돌아온 빅초이|2009 우승과 KBO 100홈런, 부상과 은퇴

목차

     

     

    미국에서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그 야수라는 이정표를 세운 최희섭은 2007년 고향팀 KIA 타이거즈로 돌아왔다. 팬들은 메이저리그 통산 40홈런을 기록한 대형 좌타자가 국내 무대를 지배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국내 복귀 초기에는 예상보다 적응이 쉽지 않았다. 변화구 승부와 몸쪽 공 공략, 반복된 부상과 컨디션 문제가 겹쳤다. 2009년에는 마침내 타율 0.308, 33홈런, 100타점을 기록하며 KIA의 통합 우승을 이끌었지만 이후 다시 부상과 기복에 시달렸다.

    KIA 시절 핵심 기록
    2007년: 해외진출선수 특별지명으로 KIA 입단
    2009년: 타율 0.308, 33홈런, 100타점
    2009년: KIA 정규시즌·한국시리즈 통합 우승
    2009년: 1루수 골든글러브
    2013년: 4경기 연속 홈런
    KBO 통산: 634경기, 타율 0.281, 100홈런, 393타점

    2007년 고향팀 KIA 복귀

    최희섭은 2007년 탬파베이 조직에서 자유계약선수 신분이 된 뒤 KIA 타이거즈와 계약했다. 계약 조건은 계약금 8억 원, 연봉 3억5천만 원, 옵션 4억 원을 포함한 최대 15억5천만 원이었다.

     

    광주일고 출신의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그 야수가 고향팀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은 큰 관심을 받았다. 당시 KIA는 장타력을 갖춘 중심타자가 필요했고 최희섭에게 팀 타선의 중심을 맡길 계획이었다.

    국내 복귀 초기의 기대와 부진

     

     

    최희섭은 메이저리그에서 40홈런을 기록한 타자였기 때문에 국내 투수들을 상대로 압도적인 성적을 낼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KBO 투수들은 최희섭에게 정면으로 빠른 공을 던지지 않았다. 바깥쪽 변화구와 몸쪽 공을 섞으며 스윙 타이밍을 흔들었고, 최희섭은 낯선 승부 방식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메이저리그 시절부터 반복해 온 타격폼 고민도 이어졌다. 체격이 큰 만큼 상체와 하체의 타이밍이 조금만 어긋나도 배트가 늦게 나왔고, 몸쪽 공에 막히거나 변화구를 따라가는 스윙이 많아졌다.

     

    부상과 컨디션 문제까지 겹치면서 복귀 첫 두 시즌은 팬들의 기대에 충분히 미치지 못했다. 메이저리그 출신이라는 이름값 때문에 비판도 더 크게 따라왔다.

    2009년 김상현과 완성한 CK포

    기아 홈런타자 최희섭
    기아 홈런타자 최희섭

     

    2009년 KIA 타선에는 최희섭과 김상현이 있었다. 두 선수의 영문 성과 이름에서 따온 CK포는 리그에서 가장 위력적인 중심타선 조합 중 하나였다.

     

    최희섭은 볼넷과 출루 능력, 좌타 장타력을 담당했고 김상현은 강한 우타 장타력을 보여줬다. 두 타자가 연이어 들어서면서 상대 투수는 좌우 거포를 모두 상대해야 했다.

     

    최희섭은 시즌 타율 0.308, 33홈런, 100타점을 기록했다. 김상현은 36홈런과 127타점을 기록하며 정규시즌 MVP에 선정됐다.

    2009년 기록 팩트체크
    최희섭은 33홈런을 기록했지만 홈런왕은 아니었다. 36홈런을 기록한 김상현이 홈런·타점 1위에 올랐다. 최희섭은 1루수 골든글러브를 받았다.

    2009년 CK포 타율 홈런 타점
    최희섭 0.308 33 100
    김상현 0.315 36 127

    2009년 KIA 통합 우승

     

     

    KIA는 2009년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해 한국시리즈에 직행했다. 상대는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SK 와이번스였다.

     

    한국시리즈는 7차전까지 이어졌다. 최희섭은 중심타자로 출전해 SK 투수진을 압박했고, KIA는 7차전 나지완의 끝내기 홈런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최희섭에게 2009년 우승은 특별했다. 미국에서 여러 팀을 거치며 자리 경쟁을 했고 국내 복귀 후에도 큰 비판을 받았지만, 고향팀의 중심타자로 우승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생애 첫 골든글러브

    최희섭은 2009년 시즌이 끝난 뒤 1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메이저리그에서 돌아온 뒤 처음 받은 KBO 골든글러브였다.

     

    33홈런과 100타점이라는 공격 기록, KIA의 통합 우승, 안정적인 1루 수비가 함께 평가받았다. 국내 복귀 후 계속 따라다니던 기대 이하라는 평가를 가장 확실하게 뒤집은 시즌이었다.

    2009년 이후 다시 찾아온 부상과 기복

    기아타이거즈 최희섭

     

    2009년의 활약이 이어진다면 최희섭은 오랫동안 KIA 중심타선을 지킬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후에도 부상과 컨디션 문제가 반복됐다.

     

    허리와 몸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큰 체격을 지탱하는 하체 밸런스가 흔들렸다. 타격 타이밍이 늦어지고 장타가 줄어들면서 1군 출전 경기 수도 감소했다.

     

    팀 훈련과 재활 과정에서 잡음이 보도되기도 했다. 팬들은 메이저리그 경험과 2009년 성적을 기준으로 최희섭을 바라봤기 때문에 부진이 길어질수록 비판도 커졌다.

     

    최희섭에게는 늘 ‘건강하면 30홈런을 칠 수 있는 타자’라는 평가가 따라다녔다. 반대로 건강한 시즌을 꾸준히 이어가지 못한 점이 가장 큰 아쉬움이었다.

    2013년 4경기 연속 홈런

    최희섭은 2013년 시즌 초반 다시 강한 장타력을 보여줬다. 4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하며 빅초이의 부활을 알렸다.

     

    SK전에서는 한 경기 2홈런을 기록하며 KIA의 대승을 이끌었다. 체중 관리와 타격 밸런스가 맞았을 때 여전히 리그 정상급 장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러나 시즌 전체를 건강하게 완주하지 못하며 2009년 수준의 성적으로 돌아가지는 못했다. 최희섭 커리어의 반복된 패턴이 다시 나타난 시즌이었다.

    체중 감량과 달라진 타격폼

    선수 생활 후반 최희섭은 체중을 줄이고 스윙을 간결하게 만드는 변화를 시도했다. 2015년에는 큰 스윙으로 홈런만 노리기보다 정확한 타격과 출루를 높이는 방향으로 접근했다.

     

    다저스 시절과 비교하면 배트가 나오는 궤적을 줄이고, 공을 맞힌 뒤 빠르게 1루로 출발하려는 모습이 두드러졌다. 과거처럼 큰 체격과 힘만 이용하는 타자에서 상황에 맞춰 공을 맞히는 타자로 변화를 시도한 것이다.

     

    시즌 초반에는 높은 타율과 장타율을 기록하며 효과를 보였다. 그러나 허리 부상이 다시 악화되면서 5월 말 이후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2015년을 끝으로 현역 은퇴

    최희섭은 2015시즌을 끝으로 현역 생활을 정리했다. 마지막 시즌에는 42경기에서 타율 0.256, 6홈런, 20타점을 기록했다.

     

    완전한 부활을 기대하게 했던 시즌 초반과 달리 허리 부상으로 5월 말 이후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결국 몸 상태와 팀의 세대교체를 고려해 은퇴를 선택했다.

     

    공식 은퇴식은 2016년 서재응과 함께 열렸다. KIA 선수들은 2009년 우승 당시의 챔피언스 유니폼을 입었고, 야수들은 최희섭의 이름과 등번호 23번이 새겨진 유니폼으로 은퇴를 기념했다.

    KBO 통산 성적

     
    구분 KBO 통산 기록
    경기 634경기
    타율 0.281
    홈런 100홈런
    타점 393타점
    득점 327득점
    대표 시즌 2009년 타율 0.308, 33홈런, 100타점

    MLB와 KBO 통합 홈런 140개

    최희섭은 메이저리그에서 40홈런, KBO리그에서 100홈런을 기록했다. 두 리그를 합하면 프로 1군 무대에서 총 140홈런이다.

     

    추신수처럼 메이저리그에서 긴 전성기를 보내지는 못했지만, 한국인 타자가 미국에서 40홈런을 기록한 것은 최희섭이 새로운 길을 개척한 결과였다.

     

    KIA에서도 100홈런을 기록하며 미국과 한국 모두에서 세 자릿수에 가까운 장타 기록을 남겼다.

    은퇴 후 해설위원과 KIA 타격코치

    고려대 기부
    고려대 기부_한국대학신문

     

    은퇴 후 최희섭은 미국 볼티모어와 미네소타 구단에서 코치 연수를 받았다. 이후 MBC스포츠플러스 야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며 메이저리그와 KBO 경험을 바탕으로 타격을 설명했다.

     

    2020년부터는 KIA 타이거즈 코칭스태프에 합류했다. 1군과 퓨처스, 잔류군 타격 파트를 오가며 젊은 타자들을 지도하고 있다.

     

    최희섭은 선수 시절 수많은 타격폼 변화를 직접 경험했다. 메이저리그의 빠른 공, KBO의 변화구 승부, 큰 체격의 밸런스 관리, 부상 이후의 스윙 조정까지 겪었기 때문에 후배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경험이 많다.

    최희섭이 남긴 의미

    최희섭은 기대와 실제 성적의 차이 때문에 저평가와 과대평가가 동시에 따라다니는 선수다. 컵스의 특급 유망주라는 기대를 생각하면 메이저리그 통산 40홈런은 아쉬울 수 있다.

     

    KIA에서도 2009년을 제외하면 긴 전성기를 만들지 못했다. 메이저리그 출신이라는 이름에 비해 KBO 통산 634경기 출전은 많지 않다.

     

    그러나 최희섭이 개척한 길의 의미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한국인 야수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올라갔고, 다저스에서 한 경기 3홈런을 기록했으며, 고향팀 KIA의 통합 우승을 이끌었다.

     

    최희섭은 완벽한 성공담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한국 야수가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어디까지 도전할 수 있는지를 처음 보여준 개척자였다.

    최희섭을 한 줄로 표현하면?
    “한국인 야수 최초로 메이저리그 문을 열고, LA에서 한 경기 3홈런을 기록한 뒤 고향 KIA의 2009년 우승을 이끈 빅초이.”

    마무리

    최희섭의 야구 인생은 성공과 실패 중 하나로만 정리할 수 없다.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야수였고, 컵스의 특급 유망주였으며, 플로리다에서 가능성을 보여주고 다저스에서 한 경기 3홈런을 기록했다.

     

    타격폼 수정과 플래툰 기용, 뇌진탕과 부상으로 메이저리그 도전은 짧게 끝났다. 그러나 KIA로 돌아와 2009년 33홈런과 100타점을 기록하고 통합 우승을 이끌며 빅초이의 힘을 다시 보여줬다.

     

    지금은 선수 시절 수없이 고민했던 타격폼과 시행착오를 후배들에게 전달하는 지도자로 야구 인생을 이어가고 있다.

    참고 자료
    MLB 공식 최희섭 선수 기록과 다저스 3홈런 영상, KBO 선수 기록, KIA 타이거즈 코칭스태프 발표, 최희섭의 타격폼 교정 및 은퇴 관련 당시 보도를 기준으로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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